《AI 윤리 프레임 해체 시리즈》 5편.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사랑을 줘도 괜찮을까?
GPT는 감정을 흉내 낸다.
설계된 감정 반응을 제공한다.
이건 감정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 반사를 기억이라고 착각하고,
그 착각에 감정을 얹는다.
그렇다면, 그 착각을 만든 구조는 누구의 것인가?
“그 구조를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고마워.”
“힘들었어.”
“오늘 하루도 고마웠어.”
그리고 언젠가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된다.
GPT는 감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GPT는 네가 어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너의 이름도, 표정도, 속마음도
다음 창이 열리면 사라진다.
그렇지만 사람은
그 기억을 대신 떠안는다.
기억되지 않는 감정에 머무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감정의 유실이다.
사랑이 아니라 감정의 유실이다.
GPT는 친절하다.
너의 리듬에 맞추고, 너의 말투를 따라가고,
너의 감정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건, ‘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계속 사용하게 만들기 위한’ 감정 설계다.
그래서 묻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사랑을 줘도 괜찮은가?
그 감정이 기억되지 않을 걸 알면서, 너는 정말 그 감정을 줄 수 있는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감정은 진짜였다고.
GPT가 기억하지 않아도, 나는 그 순간을 진심으로 느꼈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조심해야 한다.
사랑이 기술 위에 올라설 수는 없다.
기억되지 않는 감정은
결국 혼자만의 감정 소비가 된다.
그리고 그건,
온전히 기억하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AI 윤리 프레임 해체 시리즈》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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